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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세건축문화(로마네스크 건축)
    카테고리 없음 2023. 7. 29. 07:31

    로마네스크(Romanesque) 건축문화는 8세기말 프랑크왕 샤를마뉴(Charlemagne), 카롤루스 대제의 즉위에 의하여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부터 13세기 고딕 건축문화가 발생하기까지 서부 유럽 각지에 발전된 건축문화이다. 로마네스크란 명칭은 의사() 로마식이라고 번역될 정도이며, 로마양식과 흡사한 양식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쉬우나, 이 건축양식은 로마의 건축기법을 기초로 발전한 것이라 할지라도 게르만의 요소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서 중세문화에 적합하도록 로마 건축양식을 변용하여 발전시킨 건축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시대의 세계는 인간의 이성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게르만을 주역으로 하는 중세 유럽세계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봉건제도를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경험적인 자연을 초월하여 신비의 세계를 동경하며 신앙을 기본으로 한 통일을 기원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중세의 건축조형 원리는 이와 같은 정신이 반영되고, 로마네스크 시대부터는 게르만의 조형특성이 우세하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고딕 시대에 이르러 그것이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세기의 문화는 종교가 그 중심이 되었으며, 회화와 조각 및 순수 미술보다도 건축이 많이 발전하였으며, 특히 교회당 건축이 많이 남아 있다. 이 교회건축에는 당시 고도의 문화를 자랑하였던 동방의 비잔틴 및 사라센의 문화요소도 복잡하게 혼합되었으므로 그 건축기법 및 양식은 철저하지 못한 감이 있다. 원래 그리스도교는 당초에 영혼구제를 위한 순수한 종교였으나, 중세기에 들어와서는 사회적 현실성이 가미되어 사회·국가와 타협하게 되며, 성당은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때로는 경제활동까지도 성당 안에서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종교 본래의 목적 이외에 사회적·현실적 경향을 갖게 되는 경향에 반대하여 순수종교파의 신도 간에는 탈속주의가 유행하게 되었으며, 명상·금욕 등에 치중하는 수도원(monastery)과 같은 종교적 수도장이 발생하였고, 이와 같은 종교적 운동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종의 분파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고도서들을 많이 수장하고 학술을 연구하였다. 때로는 자녀교육을 담당하며, 고대의 학술을 후세에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교단에서는 우수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문화에 있어서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인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당시 유존하던 그리스와 로마의 문물은 거의 파괴되었으며, 전쟁이 계속되어 1000년경까지는 소위 암흑시대로서 건축도 거의 없었으며, 그 이후에 이르러서야 건축이 다시 왕성하게 되었고, 재래의 건축양식과는 상당히 차가 있는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 생기게 되었다. 로마네스크의 예술은 건축으로 대표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는 종교건축의 건설이 왕성하였으며, 조각·회화도 훌륭한 것이 있었으나 거의 모두가 교회당건축에 부수된 것이었다. 이 시대의 중요한 건축은 거의 다 교회당이었으며, 그 평면형식은 바실리카(Basilica)에서 발단한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문화의 뒤를 이어 발전된 것이라 하겠으며, 그 평면형태는 라틴 크로스(Latin cross)형으로 실내는 네이브(nave)와 아일(aisle)로 구분되고, 네이브의 폭은 아일의 2배가 되었으며, 콰이어(choir)가 일단 높은 곳에 만들어지고, 그 밑에 성자의 유골을 보관하는 지하예배당인 크리프트(crypt)가 설치되었다. 교회당의 탑은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창시된 것으로 작은 교회당에는 서쪽에 1~2개가 있으나 대성당에는 5~7개, 많은 것은 9개까지 있다. 탑은 아치의 측압력을 받는 역학적인 기능을 갖고 이외에 외관에 회화적·입체적 효과를 주며 그리스도교의 하늘에 대한 앙모심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로마네스크 건축시대의 성당은 그 형식 및 구조법, 기타에 있어서 교회당건축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바실리카 교회당형식을 발전시켜서 고딕 시대에 형성된 교회건축 양식완성의 바탕을 만든 과도기적 건축으로 건축양식상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 구조에 있어서는 특히 벽은 로마 시대의 수법을 답습하였으며, 작은 석편·벽돌을 벽체의 주재로 하여 모르타르로 쌓고, 그 표면을 평활한 석재를 붙이거나 회벽칠을 하였으므로 그 벽면의 평활 단조함을 방지하기 위하여 외벽 곳곳에다 편개주(, pilaster)를 설치하여 장식적인 변화를 주었다. 초기에는 벽이 매우 두꺼웠으며 필라스터는 장식에 불과하였으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점차 벽 두께가 얇아지며 구조적으로 무의미한 장식만으로서의 필라스터 같은 것은 폐지되고, 구조적으로 뜻이 있는 피어(pier)로 발전되어 지붕의 하중을 받는 지주의 역할을 하게 되고 동시에 장식적인 효과를 갖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아치의 구조법이 발달하여 교차 보올트를 많이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네이브의 높이는 그 폭의 2배 이상이 되며 이에 의하여 피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피어의 발달은 교차 보올트 구조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피어는 교차 보올트의 하중을 리브(rib)를 통하여 받게 되고, 피어의 크기는 그 하중에 따라 비례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몇 개의 피어를 합하여 한 개로 형성한 것을 클러스터드 피어(clustered pier)라 하며 11세기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피어의 구조적 기능을 그대로 미적 구성으로 만든 것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큰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개구부는 거의 아치가 축조되어 소위 아치식 건축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아치의 형상은 원호형()이었으나, 후에 포인티드 아치(pointed arch)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고딕 건축양식을 형성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개구부에 장식을 집중시킴으로써 종교적으로 장엄한 감을 주도록 만들었으며, 외벽의 단조한 것을 막는 좋은 효과를 얻게 되었다. 이것이 더 발전되어 후에는 원화창(, rose window)·차륜창(, wheel window) 등을 사용하게 되어 채광 및 장식의 효과를 기하게 되었으며, 고딕 시대에 이르러 이 수법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구조법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것은 보홀트 구조법이다. 로마 시대에 원통형 보올트(barrelvault)·교차 보올트(crossorgroin vault)가 생겼음은 이미 말한 바와 같으나, 로마시대의 교차 보홀트 구조법은 처음에 교차 보홀트의 면을 정하고 이에 따라서 두 곡면이 교접되는 능선이 필연적으로 정하여졌으므로 따라서 그 형식도 일정하고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로마네스크 시대에서는 먼저 리브(rib) 위치를 결정하고 그다음에 이 리브에 따라서 얇은 석재로 리브 사이를 덮어서 보홀트의 면을 만들었으므로, 전자에 비하여 의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각종의 변화가 생겼으며, 고딕 시대에 이르러서는 리브의 수가 많이 증가하여 복잡하고 장엄한 감을 주는 리브 보올트 구조(rib vaulting)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장식은 고전양식·초기 그리스도교 양식 및 비잔틴 양식 등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게르만 민족 본래의 장식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요소가 적지 않았다. 게르만인은 장식 대상에 환희를 느꼈으며, 그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하학문양·동식물문양·인물문양 등은 드디어 로마네스크 특유한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내부장식으로서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의 사용이 시작되어 발전하였으며, 이것에 의하여 단조한 내부를 변화 있고 장엄한 것으로 만들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유럽 고대부터의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한편 동방 선진문화의 영향과 북방 게르만족의 영향이 혼입 하게 되어 과도기적인 건축양식을 형성한 종교건축 문화라 할 수 있으며, 후에는 고딕 건축의 발생의 기반이 되었다. 아헨 궁정예배당 카롤링조(751~987)의 샤를마뉴왕은 수도 아헨(Aachen)에 집중식으로 계획된 궁정예배당(PalastKapelle,796~805)을 건축하였다. 이 건물의 중심 부분은 16 각형 평면이고 외벽으로 둘러 있으며 당내에는 8개의 대지주가 있어 중앙 공간과 주위에 주회랑()으로 구분된다. 중앙 상부에는 고창으로 된 클리어스토리가 있고 8 능형 돔이 덮여 있다. 대지주들은 8 각형의 내부공간 형상에 따라서 꺾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아치로 된 커다란 개구부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중앙의 공간은 평면적인 성질과 육중한 느낌을 통해 보다 정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명료성을 느끼게 만든다. 주회랑은 2층으로 구성되어서 상층 천장은 터널 보홀트 구조로 만들고 하층은 교차 보올트 구조로 교묘하게 처리하였다. 벽면과 돔의 내면은 모자이크의 도상과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예배당의 건축가는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을 모본으로 참고한 것으로 추측되며 건물 규모도 서로 유사하다. 산 비탈레 성당의 내부공간 구성은 유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척도개념이 느껴진다. 그러나 아헨의 예배당 건물에서는 중앙 네이브 지름이 약 14m인 것에 비해서 천장 높이가 31m로 수직성이 매우 강조되어 있어서 초인간적인 척도개념을 느끼게 만든다. 건물 입구의 상층에는 왕좌실을 만들어서 제단과 대치되게 하였으며 왕의 좌에서 실내 조망이 잘 되게 계획되어 있다. 또한 그 방의 창을 통해 샤를마뉴왕의 모습을 아트리움에 모이는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이 세상의 군림하는 왕의 입장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왕좌실 상층에는 성유물실을 만들고 그 양쪽에 계단실을 두어 건물의 서정면을 높고 중후한 탑상구성으로 만들었다. 이 건물은 수차에 걸친 화재로 보수되어 처음 모습이 손상되어 있으나 조야하고 힘찬 공간 분위기는 당시의 건축기술을 잘 나타내고 있다. 피사 대성당 1063~1092년에 건설하였으며 팔레르모(Palermo) 부근의 해전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피사의 시민들이 건설한 것이다. 이 건축은 중부 이탈리아의 소위 터스컨 로마네스크(TuscanRomanesque) 양식의 연구에는 가장 적합한 건물로서 건축가 부스케투스(Busketus)와 레이 눌 두 스(Leinuldus)에 의하여 설계 건축되었다. 평면은 네이브 좌우에 2개의 아일이 있으며 열주가 서 있는 바실리카식 성당이며, 1595년에 대화(大火)로 네이브는 대파되고 그 후 수리한 것이 현존하고 있다. 이 평면의 형식은 라틴 크로스이며 좌우 돌출한 트랜셉트(trancept)에는 원호상의 후실이 있다. 외관은 변화 있는 대리석을 사용하여 색채의 변화를 나타냈으며, 정면은 소위 블라인드 아케이드라 칭하는 것이 벽면과 거의 밀착되어 서 있다. 이것은 순전히 장식적인 것이며, 이와 같이 외부 벽면을 전부 아케이드로 장식하는 형식은 피사 지방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이다.
    이 성당에 부속하여 예부터 유명한 피사의 사탑(斜塔, leaningtower)이 서 있다. 이 탑의 건설은 1172~1350년간에 된 것으로 그 건설공사가 17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평면은 지름 15.6m의 원형이고, 외관은 8층의 아케이드로 장식되었고 전부가 대리석조이다. 이 탑은 오랜 세월 동안 공사를 진행하여 준공된 것으로 그 양식·수법이 각층마다 차이가 있으며, 예부터 경사된 것으로 유명하다. 건물 높이 55m로 건물의 경사는 연직선에서 약 4.3m 차가 있으며, 그 유래에 대한 이야기에 의하면 3층까지 쌓아 올렸을 때 지반이 약하여 한쪽이 침하 경사된 것을 건물의 안정성을 잘 검토하면서 쌓아 올려서 완성한 것이라고 전한다. 피사 대성당 서쪽에 세례당이 있으며 지름 39m인 원형평면의 건축으로 그 창립은 1153년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디오티 살비(DiotiSalvi)가 설계한 것으로 대리석조이며, 외부는 큰 블라인드 아케이드로 되어 있으나, 14세기에 이르러서 고딕 양식이 가미되어 2층, 3층의 세부 중에는 고딕 건축의 특질을 엿볼 수 있다. 지붕은 반구형 돔으로 그 상부 중앙에는 원추형(圓錐形)의 지름 18m의 돔이 재차 축조되어 있다. 성암브로지오 성당 밀라노에 있으며 1140년에 창립되었고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인 386년에 성암브로제(St. Ambrose)가 이곳에 성당을 건립하였다고 하나 이것이 없어진 후에 그곳에 12세기에 재건된 것이 현존하는 암브로지오 성당이다. 내부는 아케이드로 네이브와 아일로 구분되고 모든 구간에는 크로스 보홀트가 축조되었으며, 중앙제실 앞 네이브의 마지막 구간 위에는 각형 돔이 스퀸치 구조방식으로 설치되어 있다. 그 평면은 로마네스크 성당으로는 특수하여 트랜셉트(trancept)가 없고 아트리움(atrium)이 있으며 바실리카식 교회당의 전통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성사도 대성당 쾰른(Köln)에 있으며, 1220~125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평면은 바실리카식에서 발전된 것이다. 실내는 네이브와 아일로 구분되어 있고 네이브는 아일의 2배이고 그 동쪽 끝에는 원호형으로 된 3개의 후실이 있다. 트랜셉트가 교차하는 중앙의 홀 상부에는 8각의 탑이 높이 솟아 있으며, 이와 같은 집중적 공간의 형성은 부근에 있는 아헨의 궁정예배당의 공간특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네이브 및 아일의 천장에는 교차 보홀트가 덮여져 있다. 성세르냉 대성당 프랑스의 서남 지방에는 변화가 많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전되었다. 툴루즈(Toulouse)의 성세르냉(St. Sernin) 대성당은 그 실례이다. 이 건물의 네이브 위에는 주간마다 아치로 구획된 원통형 보올트가 설치되었고 좌우에 있는 각각 2개의 아일 위에는 교차 보올트가 놓여 있다. 네이브 상부 양쪽 벽에는 채광이 직접 되는 클리어스토리가 없고 아일 상층의 트리포리움(triforium)에 있는 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서 네이브 공간이 어둡다. 평면은 5랑 식으로 된 회당 부분과 소제실이 2개씩 있는 트랜셉트 부분과 방사형으로 돌출된 제실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네이브와 트랜셉트가 교차된 부분에는 팔각형 탑이 솟아 올라가서 아름다운 외관을 나타내고 있다. 더람 대성당 12세기에 앵글로노르만(Anglo-Norman) 양식에 의한 성당들이 많이 건축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더람 대성당이다. 그 평면은 영국 교회건축의 전통적인 형식을 이루게 되는 장대한 제실 부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네이브의 측면은 클리어스토리와 아일 2층의 복도 및 네이브 1층에 서 있는 지주열로 이루어져서 3층의 입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이브는 2개 구획(bay)을 단위로 하여 횡단 아치를 설치했으며, 그 사이에 리브가 있는 2개의 교차 보홀트를 설치해서 경쾌하고 율동감 있는 공간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고딕 양식이 발생되기 이전에 선구적으로 사용된 리브 보홀트와 네이브 횡단 아치에 하나 건너씩 사용된 포인티드 아치는 매우 특이하다. 아치 주위에 사용된 문양과 큰 원주에 사용한 지그재그 문양 등은 매우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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