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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건축문화(비잔틴 건축)카테고리 없음 2023. 7. 29. 07:17
비잔틴 건축 비잔틴(Byzantin) 건축문화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비잔티움(Byzantium)으로 환도하고 동로마 제국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어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가 터키인에게 점령될 때까지 동로마 여러 지방에 형성된 건축문화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마로 분열된 후에 서로마 제국은 일찍이 멸망하고 말았으나, 동로마 제국(305~1453)은 1,000여 년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 문화의 전통을 계승 보존하며 이를 과시하였다. 동로마 제국은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그리스 명칭을 따라서 비잔틴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비잔티움은 교통상 요로에 위치하였고, 동서의 문화가 교류·접촉하여 건축문화 발전에 있어서도 특수한 요소가 많이 반영되었으므로 비잔틴 건축양식이 독특한 양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527년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즉위한 때는 동로마 제국의 세력이 아프리카·이탈리아·스페인 각지에 미치게 되었으며, 문화예술의 진흥에 많은 힘을 썼으므로 건축문화도 많이 발전하였다. 이때 아라비아에서 이슬람교가 발생하여 정치적으로 큰 세력을 갖게 되며,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라센인이 급속히 세력을 잡아 각지를 정복하게 되고, 7세기 초에는 그 세력이 동로마 제국을 위협하게 되었다. 원래 사라센인은 건축에 특수한 천재적 기능이 있었으므로 비잔틴 건축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Osman-Turks)족의 대거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으나, 그 문화는 기본적으로 로마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서 헬레니즘 문화의 계통을 받아들이고 동방과의 접촉으로 인한 페르시아 문화 및 기타 동양적 요소를 가미하여 이를 통합하여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동로마 제국부터 시작된 비잔틴 건축은 동양적 요소를 다분히 가하여 장려하여졌으며,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 발생될 때까지 동서건축문화의 기조가 되었다. 비잔틴의 중요한 건축은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과 같이 교회당과 세례당 및 분묘 등으로 건축수법은 벽돌을 두꺼운 모르타르 줄눈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벽의 적심(積心)은 콘크리트로 만들기도 하였다. 특히 두꺼운 줄눈을 사용하고 모르타르도 석회·모래·도기편 등을 혼합하여 견고한 접합제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치장벽돌을 벽 표면에 붙여서 조적벽체 외관에 변화를 주어 충분한 표면장식 효과를 형성하였다. 이 시대의 특이한 건축구조로는 돔 구조법의 발달이라 하겠다. 로마시대에는 원형 평면 위에 돔이 축조되었으나, 비잔틴의 돔은 4 각형의 평면 위에 소위 펜덴티브(pendentive)를 사용하여 그 상부에 돔을 축조하였다. 이것은 페르시아에서 처음 발달되기 시작한 것이나 이것이 완성되어 대규모로 널리 응용된 것은 비잔틴 시대부터이다. 비잔틴 건축의 외관은 중앙의 대도마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소돔이 많이 모여 있고, 교차 보올트(corssvault)가 축조되어 구조적으로 독창적인 부분이 많으며, 종래의 건축양식과 비교하여 그 외형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즉 비잔틴 건축에서는 동·아치·보올트 등의 요소가 건축형태를 결정하는 주요 부분으로 사용하였으므로 로마 건축의 외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엔태블러처(entablature)가 없어지고 구조상 필요한 것만이 남게 되었다. 구조적인 비판이 없이 장식적인 그리스의 전통적 수법을 계승한 점이 있었던 로마 건축과는 달리 비잔틴 건축에서는 구조적인 진실을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로마 건축의 주재는 흔히 장식적으로 취급하였으나, 비잔틴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되어 기둥이 아치를 지지하게 되며,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비잔틴 건축의 기둥은 주두가 2중으로 되어 있으며, 상부는 부주두(dosseret)라 하여 아치를 받치는 베이스(base)가 되었다. 돔은 그 형태로 보아 건물 내부에 집중적이며 통일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만든다. 그러나 기능적으로 생각하면 평면형태는 원형보다 정방형이 유리하므로 정방형의 평면에 돔을 축조하는 착상이 옛적부터 시도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것이 많이 발전된 것은 후기 페르시아 시대에서였으며, 그 완성을 보게 된 것은 비잔틴 시대였다. 펜덴티브의 발달의 과정을 고찰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돔과 벽을 기하학적으로 생각하여 우선 벽체 상단에 구성되는 정방형에 외접하는 반구를 생각한다. 다음에 그 반구를 원에 내접하는 정방형 4 변에 서게 되는 4개의 수직면으로 잘라보면 그 단면이 반원형이 되며 4점에서 지지된 반구의 일부가 남는다. 이것을 다시 이 4개의 반원정점을 포함하는 평면으로 수평하게 자르면 그 단면은 원이 되고 결국 최초의 반구는 4개의 구면 3각형이 된다. 이것이 곧 펜덴티브(pendentive)이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원형 단면 위에 반구의 돔을 만든다. 이 방법에 의하면 교차 보올트와 같이 하중이 4개의 우부(隅部)에 집중되므로 이 부분에 충분히 견고한 아치와 피어(pier)를 만든다면 벽을 전부 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법은 비잔틴과 로마 후대의 건축가 중 구조와 기하학에 뛰어난 사람들에 의하여 발명된 구조방법으로 비잔틴 건축의 특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비잔틴 건축에서 특이한 것은 그 건축장식이다. 즉 동방문화와 융합하여 화려한 색채와 표면장식을 애용하는 아시아적 경향이 많이 가미되었다. 비잔틴의 건축장식은 평면장식이다. 로마 건축은 많은 부조(浮彫)를 사용하여 그 음영의 효과를 주로 하였는데, 비잔틴 건축은 평활한 면에 색채적 효과를 주로 하였다. 벽면첩부 대리석, 화려한 모자이크 등은 한층 발전되었다.산타소피아 대회당 이것은 후에 터키인들이 이슬람교 모스크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아야 소피아(Aya Sophia)라 부르고 있다. 36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창건한 후 소실한 것을 536년에 재건한 것으로 이때의 건축가는 트랄레스(Tralles)의 안테미우스(Anthemius)와 밀레투스(Miletus)의 이시도루스(Isidorus)의 두 사람이라 하며, 유스티아누스(Justianus) 대제가 직접 지휘하여 건축하였다 한다. 산타 소피아라 함은 ‘신의 지혜’라는 뜻으로 그리스의 파르테논, 로마의 판테온(Pantheon)과 함께 비잔틴의 산타 소피아대회당은 3대 건축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평면은 거의 정방형의 윤곽을 가진 아트리움(atrium)이 있고, 나르텍스(narthex) 앞에 엑소나르텍스(exonarthex)가 있다. 본당은 폭 71m, 길이 77m이며, 본당의 중심에는 지름 31m의 도움이 가구(架構)되어 있다. 이것을 받고 있는 7.5m각의 피어가 4 귀퉁이에 있으며, 이 피어를 보강하기 위하여 대버트레스(buttress)가 있다. 중앙 대돔의 주위에 세미돔(semi-dome)을 축조하여 돔의 압력을 분포시켰다. 중앙 돔의 정상까지의 높이는 바닥부터 50m이며 돔만의 높이는 14m이다. 이 돔의 형상은 반구형보다 약간 낮으며 하부에는 40개의 아치를 대상(帶狀)으로 배치하여 창들을 만들어 채광이 되게 하였다. 평면은 중앙에 폭 31m, 길이 75.7m의 네이브가 있고 좌우에 폭 15m의 아일이 있다. 이 평면형식은 일반적인 교회당 건축형식 중에서 생각해 본다면 3랑 식이라 할 수 있다. 이 회당의 내부공간은 초기 기독교회당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이며 정적인 공간이 아니다. 높이 솟아 있는 반구형의 중앙 돔은 그 밑에 늘어서 있는 40개의 광창들로 말미암아 드높이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내부공간은 광선과 아름다운 색들로 충만되어 장엄한 종교적 예배공간을 연출함으로써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신비한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건축은 역학적 처리의 기묘한 점, 그 실내장식의 훌륭한 점 등에서 그 명성이 고금을 통하여 빛나고 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교도에게 멸망되었을 때 많은 시민이 이 건물에 도피하였다가 참살되었으며, 이슬람교도는 이 건물을 개수하여 이슬람교의 그 당시 총본부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 외관에서 볼 수 있는 4개의 이슬람교 특유의 첨탑인 미너렛(minaret)은 16세기에 이슬람교도가 부가한 것이다. 북이탈리아의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도시인 라벤나는 지중해의 교통 요충지로서 동방의 건축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은 526~547년에 건축되었으며, 평면이 팔각형의 집중식으로 되어 있다. 이 건물의 중앙 홀 주위에는 8개의 대지주가 놓이며, 그 위에 높이 솟은 돔을 떠받치고 있다. 이 지주들 사이에는 각각 2개의 원주들이 반원형의 앱스(apse) 공간을 형성하여 주회랑(周廻廊, ambulatory)쪽으로 들어가게 평면이 구성되어 있어서, 중심공간 주위에는 광활하고 여유가 있으며 유동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실 부분 쪽에는 깊은 축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어 집중적인 중앙 홀이 주가 되고 2차적인 직선축을 이루는 공간이 부차적이 되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주출입구 홀인 나르텍스 공간을 주축성에 대해 약간 경사지게 만든 것은 건축공간 처리에 매우 교묘함을 느끼게 한다. 성당 내부공간의 유동성과 운동감을 추구한 점은 중세 교회건축의 공간구성 양식의 연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제실의 깊게 들어간 양쪽 벽 상부에는 정신(廷臣)을 거느린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와 궁녀를 거느린 황후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도상들이 마주 보게 장식되어 있어 유명하다. 천상을 나타내는 돔은 영화된 공간을 의미하며, 이 공간은 예비적인 공간인 낮고 어둡고 험난한 공간을 통과한 후에만 도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인이 천국에 이르기 위해 요구되는 지속적인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자들은 중앙의 원형 공간에 모이게 되므로 중앙의 높고 넓은 공간은 교인들의 결집과 통일을 강력히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성비탈레 성당의 내부공간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탁월하게 상징적으로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산 마르코 대성당그 대부분이 1042~1071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코라(Chora)의 교회당을 모방하여 지은 것이라 하며, 그 평면은 그리크 크로스(Greek cross)로 중앙에는 지름 12.6m의 돔이 축조되어 있다. 크로스의 4 끝에는 돔이 있으며, 내부의 밑부분은 색유리·대리석 등을 붙였고 돔 및 보올 트도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면 입구는 주열이 서 있다.